파리 목숨
조병태 시인
허기진 파리 한 마리
주위를 살피면서 식탁 위에 내려앉는다
숨을 죽이고 살그머니 일어나
파리채를 가져왔다
정조준하고 내리치려는 순간
자신의 죽음을 눈치챘는지
다소곳이 앉아 두 손을 싹싹 빌며
목숨을 구걸한다
측은지심을 가지고
생사를 신중하게 결정하려는 순간
고개를 두어 번 갸우뚱거리더니
죽음의 활주로를 가볍게 이륙한다
구명의 애원을 자비심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감사하며 떠나는가!
나에게도
결정적인 운명의
절박한 순간이 닥쳐온다면
얌전히 무릎 꿇고
두 손 싹싹 빌어 볼 거나.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