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사주지 범상스님 시인 수필가
우리사회는 언젠가부터 명절에 대한 이중적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 하나는 연휴로서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는 본능적 즐거움이요,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의 도리를 실천해야 한다는 이성이 만들어 내는 부담이다.
인간은 본능과 이성 사이에 갈등하는 존재로서 동물과 차별된다. 본능을 따르는 보편적 사례와 이성의 특수성에 대해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이 살을 빼겠다며 철석같은 다짐을 한다. 하지만 음식 맛이 당기는 순간 이성은 본능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것은 누구나 겪는 본능의 보편적 현상으로서 도덕적 문제를 삼지 않는다. 반면 이성이 만든 특수성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유교문화권에서도 동방예의지국으로 칭송받았다. 조상제례 등은 의무였으며 지금도 자식의 유무가 복지의 심사기준이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조상제례와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 행위는 사회적 낙인이 되었다. 현재는 많이 달라졌지만 사회적 압박은 여전하다. 다른 사회역시 그들의 나름의 규범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해 나간다.
인간이란 이성을 가진 존재를 말한다. 하지만 이성은 여전히 다섯 배나 강한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 앞서 말한 살빼기 실패역시 이를 원인으로 한다. 여기에 현재 인류사회 대부분은 본능을 강하게 자극하는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고도의 이성적활동인 명절이나 연배의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예의 등은 설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이미 부모 자식 간에도 자본의 유무가 친소관계의 척도가 된지 오래이다.
동방예의지국은 국토가 가지는 강력한 특수성이 만들어낸 가치이다. 그로 인해 현재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충격을 감내해야 한다. 유교의 종주국 중국은 존비어가 없다. 반면 우리는 같은 학교 같은 학년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진 아이가 공동체 규범에서는 “사장 아드님, 우리자식 놈”이라 불린다. 이 말 속에는 ‘사장 아드님은 자식 놈의 아버지 보다 높은 지위를 갖는다’ 왜 이런 현상이 당연시 되는 것일까?
그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다음에 있다. 우리국토는 동쪽으로 백두대간이 뻗어 내리면서 갈라진 산맥들이 마치 머리빗처럼 서해로 흘러들어 간다. 그래서 ‘고개를 넘으면 강을 건너야하는’ 반복적 구조는 대규모 전쟁이 불가능하다. 식민사학의 영향으로 외침을 많이 받은 불행한 민족이라 배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오랫동안 중앙집권제 국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 만년 역사에서 외세에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기간은 34년 11개월 16일에 불과하다. 그것도 전쟁이 아닌 과학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국제질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렇게 안정적 국토에서는 인구이동과 신분의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한 지역에 대대로 수 백 년을 살면서 도덕으로 집안의 위상을 내세우게 되었다. 가가예문이라는 말처럼 조선시대에는 각 집안마다 예법을 만들어 명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삼았다. 변하지 않는 신분계급, 이동이 없는 사회, 씨족의 항렬과 나이, 씨족 중 한사람의 출세가 가문의 영광이 되는 국가정책 등은 어이없게도 과도한 예의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씨족 중 한사람의 일탈을 문중이 감내해야 했고, 문중은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여 선한 방향의 일탈인 불의에 대한 저항마저 억압했고, 지나치게 예법을 강요했다.
그런데 과학문명과 자본주의가 도래한지 체 100년이 안되어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들며, 수 천 년 이어온 유전자와 같은 예의에 대한 관념을 하루아침에 파괴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의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명절은 이와 같은 변화 속에 과거 수 천 년을 지켜왔던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계속해서 불을 지피는 것은 식민교육을 신봉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무리들이다. 식민교육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쳐서 주류로 성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너희는 못난 민족이야 그러므로 너희 문화와 역사는 저급하다고 세뇌시킨다” 이렇게 되면 기득권이라는 본능이 양심이라는 이성을 짓눌러 버림으로 민족의 정체성인 문화가 서서히 말라 죽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문제를 공론화하여 이성적행위의 결정체인 명절의 고유 가치를 회복하여 예의와 존경, 존중의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재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