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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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세력 응징에 힘써
총독암살 시도 발각, 풍기 피신 박상진 만나 대한광복회 만들어
기사입력: 2015/07/06 [09:46]  최종편집: ⓒ 내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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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종 의사(사진)는 1883년 1월 14일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 70번지에서 출생했다. 그리고 1921년 8월21일 대구 형무소에서 일제에 의해 사형집행으로 순국했다. 1900년 2월에는 홍주의병에 참가한 부친 김재정의사를도와 홍주의병에 참가했으며,1916년 7월 조선총독이 부여를 시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조선총독을 처단하려는 것이 발각돼, 경북 풍기로 피신해, 채기중, 박상진의사와 함게 대한광복회를 만들었고, 군자금을 모아 만주에 무관학교를 세워 국권을 되찾고, 친일세력을 응징해 나라를 되찾고자 했다. 김한종 의사의 부친은 홍주의병에 참여했고, 김재풍 의사는 김한종 의사의 삼촌으로 대한광복회가 국내의 소자산가들에게 고시문을 발송할 때 고시문에 날인할 인장을 직접새겨 김한종 의사에게 전달했으며, 김재창, 김원묵, 김재철,김재인, 김성묵 등은 군자금 모집시에 정보를 제공하거나 대한광복회 회원들이 활동할 때에 이들을 피신시키거나, 무기를 보관했다가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당시 40여호가사는 이 마을에서 일가 및 부친인 김재정의사의 제자들 9분이 의병 활동을 했다. 김한종 의사가 태어난 1880년대에는 조선이 처음으로 외국에 문호를 개방해 새로운 서양 문물이 급격하게 밀려들어오던 때였다. 일본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1895년 8월 20일에는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 부친인 김재정의사가 홍주의병에 참가하면서 청년이 된 김한종의사 역시 부친을 도와 참가한 후, 홍주의병이 패하게 되자성달영 등과 함게 당시 오지였던 김의사 집으로 피신한 후 총독암살을 시도했다. 1916년 7월, 김경태, 김재창과 함게 부여의 이철영 집에서조선총독이 부여지방을 사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조선총독 암살을 계획했다. 그러나당시 일본 경찰이 사전 정보에의해 김의사집을 수색했고, 김한종 의사는 경북 풍기로 피신해 대한 광복단을 이끌던 채기중선생을 만나고, 채기중 선생의 소개로 허위선생의 제자이며, 경북갑부인 박상진을 만나대한광복회를 만들었다.    예산/김영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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